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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혼 그라나디노

레모혼 그라나디노

염장한 대구를 구워 오렌지, 양파 등을 곁들여낸 스페인의 샐러드이자, 그라나다의 전통 요리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자치지방에 위치한 그라나다의 전통 요리이다. 그라나다뿐 아니라 말라가와 알메리아와 같이 안달루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이때 스페인어로 ‘레모혼(remojon)’은 염장한 대구와 오렌지를 첨가하여 만든 샐러드를, ‘그라나디노(granadino)’는 ‘그라나다산’을 뜻한다. 레모혼 그라나디노는 전통적으로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으나, 오렌지를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레모혼 그라나디노 또한 시기에 구분 없이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조리법 볼에 차가운 물을 받고 그 안에 대구를 넣은 뒤 약 하루 동안 소금기를 뺀다. 이 시간 동안 대구를 담은 물을 세 번 정도 갈아주는 것이 좋다. 달걀은 삶아서 껍질을 벗긴 뒤 사등분 한다. 오렌지는 껍질을 벗겨서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는다. 양파는 얇게 슬라이스하고, 블랙 올리브 또한 슬라이스 하여 준비한다. 대구는 물기를 제거하여 준비한다.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대구의 양면을 노릇노릇하게 구워낸다. 볼이나 접시에 염장한 대구를 올리고 소금, 후추로 간한다. 여기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달걀, 양파, 블랙 올리브, 오렌지를 올려 요리를 완성한다. 영양정보 주재료인 대구는 고단백 식품이면서도 지방과 칼로리가 적어 체중조절 시 도움이 된다. 또한 비타민B군, 비타민 E가

키지 포고스트

키지 포고스트

러시아 북서부 카렐리아(Karelia) 공화국 오네가(Onega) 호수에 있는 작은 섬. 18세기에 만들어진 교회를 비롯하여 정교하고 과학적인 목조건축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목조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키지 포고스트는 길이 7km, 넓이 0.5km의 섬이며, 야트막한 초원으로 뒤덮여 있다. 섬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예수변모교회와 포크로프스카야 교회(Pokrovskaya , 마리아 보호 교회)이다. 두 교회는 동서로 나란히 인접해 있으며, 양파 모양의 장식용 지붕을 겹겹이 이고 있다.  동쪽에 있는 건물은 ‘러시아 목조건축의 꽃’이라 불리는 예수변모교회이다. 양파 모양의 돔 22개가 전체적으로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며 6층으로 배치되어 있다. 마지막 돔 지붕까지의 높이는 37미터이며, 위로 올라갈수록 돔 지붕의 크기가 커진다. 1693년에 처음 건설되었으나, 벼락을 맞아 붕괴된 뒤 1714년 재건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102개의 바로크풍의 성상이 그려져 있는 성화벽이 있다. 서쪽의 포크로프스카야 교회도 유사한 양파 모양의 돔 지붕을 갖고 있으나, 겹겹이 층을 이루지 않고 중앙의 대형 돔을 중심으로 8개의 작은 돔들이 배치된 좀 더 단순한 형태이다. 중앙 돔까지의 높이는 27미터이며 1764년에 세워졌다. 두 교회 사이에는 8각형의 목조 종탑이 놓여 있는데,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된 것을 지속적으로 재건해왔으며, 남아 있는 것은 1862년에 마지막으로 복원한 것이다. 두 교회와 종탑 모두 북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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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독일의 근대 활판인쇄술의 발명자. 1450년경에 인쇄공장을 만들어 인쇄술을 발전시켰으며, 《구텐베르크 성서》를 출판하였다. 구텐베르크와 제자들에 의한 인쇄술의 보급은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을 촉진하였다.
마인츠 출생. 1434~1444년경 마인츠를 떠나서 스트라스부르에 있을 때 인쇄술을 발명하기 시작하였다. 마인츠로 돌아와서 1450년경에 금은세공사 J.푸스트와 함께 인쇄공장을 만들어 천문력(天文曆)이나 면죄부(免罪符) 등을 인쇄하였다. 2~3년 후에는 기술이 향상되어 《36행 성서》와 《42행 성서》를 인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구텐베르크 성서》이다. 그 때까지의 인쇄기는 아마포 압축기(亞麻布壓縮機)와 비슷하였는데, 틀에다 양피지(羊皮紙)를 바른 것으로 인쇄지를 고정시키는 개량을 하였다. 활자의 주형(鑄型)은 주석과 납의 합금이었으며, 그 주조법도 납땜 세공사의 손에 의하여 고도로 발달해 있었다. 그러나 1455년 그의 사업은 결국 파산하게 되어 출자자인 푸스트에게 부채의 보상으로 인쇄공장을 양도하였다. 그 후에는 푸스트와 푸스트의 양자 P.쇠퍼가 활자주조기술의 개량을 계속하였다. 후일 구텐베르크는 C.후메리의 원조로 인쇄공장을 재건하였으며, 1460년경 《구텐베르크 성서》라고 하는 성서를 출판하였다. 그것은 1760년 추기경(樞機卿) 마자랭의 문고(文庫)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마자랭 성서》라고도 한다. 마인츠에서 성행하던 인쇄업은 1462년 마인츠시(市)의 대주교 자리를 노리던 나소왕(王) 아돌프 2세의 약탈로 파산하였으며, 구텐베르크는 많은 제자들과 함께 편력(遍歷)의 길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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