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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토마타다스

엔토마타다스

기름에 튀긴 토르티야에 토마토소스를 곁들여낸 멕시코의 전형적인 요리이다. 토르티야를 기름에 튀겨 토마토 소스를 곁들인 음식이다. 멕시코의 전형적인 요리로 멕시코 전역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엔토마타다(entomatada)’는 스페인어로 ‘토마토가 섞인, 토마토로 요리한’이라는 뜻을 가진 여성형 형용사이다. 재료 엔토마타다스는 엔칠라다와도 유사하나 엔칠라다가 고추를 첨가하여 만든 소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비해, 엔토마타다스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토마토 소스가 특정되어 사용되는 요리이다. 주재료인 토르티야, 토마토 소스 이외에 닭고기, 소고기, 치즈, 콩, 양파 등이 곁들여지기도 하며, 때때로 리프라이드 빈스(refried beans: 으깬 콩 요리로 멕시코와 텍스-멕스의 음식)나 익힌 쌀을 곁들이기도 한다. 조리법 양파는 잘게 다져 준비한다. 토마토는 밑부분에 십자로 칼집을 낸다. 냄비에 토마토, 마늘을 넣고 끓인다. 이때 취향에 따라 할리피뇨를 첨가하여도 좋다. 다진 양파 약간에 케소 프레스코(queso fresco)를 섞어 놓는다. 토마토가 익으면 토마토의 껍질을 제거한다. 마늘과 토마토를 믹서에 넣고 곱게 갈아준다. 냄비에 오일을 두르고, 남은 양파를 넣어 볶아준다. 여기에 마늘과 토마토를 갈아놓았던 것을 붓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끓여 토마토소스를 완성한다. 또 다른 팬에 오일을 두른 뒤 토르티야를 단시간 내에 튀겨준다. 튀긴 토르티

톨레도 역사도시

톨레도 역사도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3가지 색채가 깃들어있는 도시로 로마시대부터 16세기까지 수도였다. 198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톨레도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70킬로미터(km) 거리에 있는 인구 6만 여 명의 작은 도시로, 마드리드가 수도가 되기 전 1천 여 년 동안 스페인의 중심지였다.  도시는 로마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서고트 왕국, 이슬람 왕국,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다. 삼면이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바위산 위에 건설되었으며,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의 고향인 카스티야-라 만차 지방 톨레도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덕분에 톨레도에는 로마시대 유물인 원형경기장부터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유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사실상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며, 단위 면적당 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도시 중에 하나로 꼽힌다.  각종 종교 시설이나 박물관은 물론 일반 가정집까지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이 때문에 1561년 필리페 2세의 천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상실되었어도 톨레도는 여전히 스페인의 정신적인 수도로 불리고 있다. 톨레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데하르 양식 건축물이다. 무데하르는 이슬람 지배가 끝난 뒤에도 스페인에서 살았던 이슬람교도들을 일컫는 말이며, 무데하르 양식이란 스페인에서 발달한 이슬람과 서구 문화가 결합된 건축 양식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스페인 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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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이순신

조선시대의 장군으로 임진왜란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을 이끌고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어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출생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1545년(인종 1) 4월 28일(음력 3월 8일) 한성부(漢城府) 건천동(乾川洞, 현재 인현동)에서 이정(李貞)과 초계 변씨(草溪卞氏)와의 사이에서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보성군수 등을 지낸 방진(方震)의 딸인 상주 방씨(尙州方氏)와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으며, 이 밖에 해주 오씨(海州 吳氏)와의 사이에 2남 2녀가 있었다. 무과급제와 함경도 근무 1572년(선조 5) 훈련원(訓鍊院) 별과(別科)에 응시했으나 말에서 떨어져 왼쪽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탈락하였다. 그래서 30세가 넘은 1576년(선조 9)에야 식년시(式年試) 무과(武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해 관직에 나섰다.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와 함경도의 동구비보(董仇非堡) 권관(權管), 발포수군(鉢浦水軍) 만호(萬戶) 등을 거쳐 건원보(乾原堡) 권관, 훈련원(訓鍊院) 참군(參軍)을 지냈다. 하지만 1583년(선조 16)에 부친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부친상을 마치고 1586년(선조 19) 사복시(司僕寺) 주부(主簿)로 다시 관직에 나서, 곧바로 함경도 조산보(造山堡) 만호(萬戶)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이듬해 녹둔도(鹿屯島)의 둔전(屯田)을 관리하다가 여진족의 습격을 당해 피해를 입으면서 경흥부사(慶興府使) 이경록(李慶祿)과 함께 감옥에 갇혔다. 당시 이순신의 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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