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조가 선계21원파 집의공파( 방호공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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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웹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385회 작성일 21-02-10 16:29본문
어르신이 물으시면 본관은: 함안 세파: 집의공파 ( 조여.어계공 ) - 몇세손 입니다. 라고 해야 합니다.
시호: 어계공.정절공( 漁溪公 ) 趙( 휘 ) 여( 旅 )
天啓-悅-安(4)-旅
어계집
1) 행장(行狀)
[세종 2년(1420년) 성종 20년(1489년)] 조선 초기 단종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 사람.
본관은 함안(咸安).
자(字)는 주옹(主翁)
호(號)는 어계.정절(漁溪)
경상남도 함안출신.
고려 공조전서(工曹典書) 열(悅)의 손자로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안(安)의 아들이다.
단종 1년(1453년) 성균관 진사가 되어 당시의 사림 사이에 명망이 높았으나 1455년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禪位)하자 성균관에 있다가 함안으로 돌아와서
서산(西山) 아래에 살았는데 이 서산(西山)을 후세 사람들이 백이산(伯夷山)이라고 불렀다.
그는 벼슬을 하지 않고 다만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스스로 어계(漁溪)라 칭호(稱號)하였다.
숙종 24년(1698년)에 노산군(魯山君)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703년 경상도 유생 곽억령(郭億齡) 등이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의 예에 따라 생육신인 조여도 사당을 세워
제향하도록 건의하였던바 1706년에 그대로 시행되었다.
고향인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는 그를 비롯하여 김시습(金時習) 이맹전(李孟專) 원호(元昊) 남효온(南孝溫) 성담수(成聃壽) 등이 제향(祭享)되어 있다.
정조 5년(1781년)에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어계집(漁溪集)이 남아 있다.
시호(諡號)는 정절(貞節)이다.
2) 덕업(德業)
공은 비조(鼻祖) 원윤공(元尹公) 諱 정(鼎)의 11대손이고 전서공(典書公) 휘(趙) 열(悅)의 손자로서 슬하에 진산공 동호(銅虎) 좌윤공 금호(金虎)
참봉공 야호(野虎)의 삼형제를 두어 500여년이 지난 오늘에 걸쳐 자손이 번창(繁昌)하고 있다.
비조(鼻祖)의 성덕(盛德)과 어계선조의 고풍준절(高風峻節)이 백대(百代)에 빛을 내고 많은 조상(祖上)의 충절(忠節) 절행(節行) 문장(文章) 관면(冠冕) 등이
누세(累世) 면면(綿綿)하여 명문(名門) 저성(著姓)의 명가(名家)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은 조상들이 쌓은 청백(淸白)의 음덕(蔭德)임을 알아야 한다.
3) 어계공 21원파-7분파(分派)
공(公)은 슬하에 동호(銅虎) 금호(金虎) 야호(野虎)의 삼형제를 두었다.
趙 동호(銅虎)의 아들 7형제에서 참판공파(參判公派) 어모공파(禦侮公派) 집의공파(執義公派) 판결공파(判決公派) 사과공파(司果公派)
우후공파(虞侯公派) 내헌공파(耐軒公派)로 분파되었다.
趙 금호(金虎)의 아들 3형제에서 남계공파(南溪公派) 절도공파(節度公派) 현감공파(縣監公派)로 분파되었다.
趙 야호(野虎)는 참봉공파(參奉公派)의 파조(派祖)이다.
우리 함안조씨(咸安趙氏)의 시조(始祖)는 趙(휘) 정(鼎)이시다.
고려조(高麗朝)에 원윤(元尹)의 벼슬을 하셨고 후손(後孫)이 함안(咸安)에 정착하여 대대로 세거(世居) 하면서 본관(本貫)을 함안(咸安)으로 삼았다.
기미대동보(己未大同譜) 제 1 편 7쪽 범례(凡例)에는 “원윤공(元尹公) 趙 정(鼎) 이하 전서공(典書公)
趙 열(悅)의 종손(宗孫)은 정절공(貞節公) 趙 여(旅)의 사손(嗣孫)이 계승한다.
(自元尹公趙鼎以下至典書公趙悅宗孫以貞節公趙旅嗣孫繼承事)”고 되어 있다.
파계도: 21원파.76지파 로 나눈다.
집의공파 76지파-5분파(執義公派)는 시조(始祖) 원윤공(元尹公) 趙 정(鼎)의 13대손으로 어계공(漁溪公)의 손자이자 진산공(珍山公)
趙 동호(銅虎)의 셋째아들인 무진정선생(無盡亭先生) 趙 삼(參)을 파조(派祖)로 한다.
공의 후손에서 승지공파(承旨公派) 낙천공파(樂川公派)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방호공파(方壺公派) 무과공파(武科公派)로 분파되었다.
방호공파(方壺公派)는 내헌공(耐軒公) 趙 연(淵)의 증손자이자 망운공(望雲公) 趙 지(址)의 넷째 아들로 재종숙(再從叔) 사직공(司直公)
趙 개(介)에게 출계(出系)한 방호공(方壺公) 趙 준도(遵道)를 파조(派祖)로 하며 자손들의 주거주지(主居住地)는 경북 청송 강원도 영월 서울 등이다.
조준도 :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 청송 출신.
아버지(조정백)는 판서에 추증된 지(址)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습독(習讀) 회(恢)의 딸이다.
재종숙인 개(介)에게 입양되었으며 김언기(金彦璣)의 문인이다.
저서(작품)
방호집
대표관직(경력)의영고주부
함안 조씨(咸安 趙氏)
시조
정(鼎)은 중국 당나라 사람으로 신라 말기에 두 아우 부(釜)와 당을 데리고 들어와 왕건을 도와 태조 14년(931년) 고창성(지금의 안동)에서
견휜군을 무찌르고 동경주현을 항복 받아 고려 통일에 큰 공을 세워 개국벽상일등공신 대장군 원윤이 되셨다.
안동의 칠현사 충렬사에서 제향하고 있다.
역사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함안을 본관으로 하였다.
정의 아들 간이 중랑장을 지냈으며 시우는 오위도영장 영준은 형부상서를 지냈다.
열은 고려 공민왕때 공조전서에 이르렀으나 이성계의 개국 때 정몽주 이색 등과 친교 하시면서 은둔하셨다.
공양왕 4년에 이성계가 공양왕을 폐하고 왕이 되자 두문동에 은둔하시며 이성계 이방원이 회유하였으나 절개를 굳게 지켜
백이숙제에 비유되는 충절을 남기셨다.
조선시대에 유명한 인물로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여로 그는 시조의 10대손이다.
여의 현손 종도는 선조 때의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으며 임도는 전원에 묻혀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인조반정 후에 공조좌랑을 지냈다.
영조 때에는 시·서·화 삼절 영우가 있고 조선 후기에는 화가로 산수·인물에 뛰어난 정규와 희룡이 있다.
독립운동가로서 이름을 드높인 조명하는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을 수여받았고 조용은은 임시정부의장을 지내고
그는 해방 후에 국민의회의 상임위원회의장을 지냈다.
현재 21원파와 76지파가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231,728명으로 성씨 순위 32위 이다.
2003년 1월 통계청 발표(2000년 11월 1일 기준)에 의하면 조씨는 전체 성씨 중 7위로 306,022호에 984,913명으로 나타났다.
그중 한양이 가장 많고 다음이 함안으로 81,048호에 259,196명이며 본관이 15개에서 33개로 늘었다.
계파: 21원파.
통판공파.충순공파.사인공파.고죽재공파.산원공파.참지공파.참판공파.어모공파.집의공파.판결공파.사과공파.우후공파.내헌공파.남계공파
절도공파.현감공파.참봉공파.소윤공파.제학공파.덕곡공파.전서공파 등이 있다.
중요 인물.
조단석:-고려.원윤.
조시우:-고려 오위도령장.
조영준:-고려 형부상서.
조승숙:-조선 호 덕곡 시호 문경공 감무.
조 강:-조선 관찰사.
조종례:-조선 직제학.
조 순:-조선 이조참판.
조 여:-조선.시호 정절공.생육신.
조 연:-조선 도사.
조종도: 문인 - 조선 시호 충의공 군수.
조임도:-조선 공조좌랑.
조봉원:-조선 동지중추부사.
조영석:-조선 첨지중추.
조영복:-조선 한성부좌윤.
조중희:-조선 시호 충헌공 이조판서.
함안조씨 항렬자(咸安趙氏行列字)
금(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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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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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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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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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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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태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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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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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성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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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奎(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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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용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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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濟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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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來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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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현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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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세:재在(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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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欽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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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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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동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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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세: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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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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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종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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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한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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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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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세:형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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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세:均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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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호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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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세: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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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병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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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세:炫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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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세:기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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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세:錫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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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영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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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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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세:병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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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중간에 오느냐 끝에 오느냐 입니다.
함안조가 선계21원파(집의공파) 76지파(방호공파) 세파(집의공파)어계공.30세손.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로부터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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